엄청난 재해를 당한 일본이지만...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1/03/12/4843788.html?cloc=nnc





진앙지 바로 근처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열도라는 쉴드에게 보호를 받아 지진파의 영향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있는 한반도의 모습...


함부로 농담 비슷한 말을 던지기에는 너무 엄청난 재해를 당해서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나 대신 애써 줘서 고맙고 미안하달까 뭐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드네요. 개인적으로 구호성금이라도 보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끼게 되는군요.

'나는 가수다' 리뷰 - 독특한 장르적 쾌감

일일히 문장을 다듬기 귀찮아서 딴지일보 혹은 디씨 스타일로 그냥 손가락 누질러지는 대로 막 씁니다. 거부감이 있는 분들은 여기서 뒤로 가기를 눌러 주세요.

 

사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묘미는 참가자들이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 조낸 죽을둥 살둥 생지랄을 떨다가 결국 탈락하고 난 뒤 아쉬워서 질질 짜는 모습을 볼 때 느껴지는 말초적인 쾌감이다. 어렸을 때 어리버리한 애를 이지메하면 이 자식이 아둥바둥 버티다 결국 징징 울어재끼는 걸 볼 때 나오는 가학적 쾌감 비슷한 것이 저 밑바닥에 깔려있는 거지. 그래서 본인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별로 안 좋아한다. 되게 비인간적일 때가 종종 있거든. 특히 좀 재능은 없지만 열심히 하는 애를 진짜 인정사정없이 갈구다가 떨어뜨릴 때는 가슴이 아프더라고.


그런데 나가수는 이 쾌감의 방향성이 약간 달라지더라. 왜냐하면 참가하는 가수들이 죄 한가닥하는 양반들이거든. 사실 결과가 어떻게 나든지 이 양반들에게는 별로 상관이 없어. 여태까지 노래 하나로 잘 먹고 잘 살던 분들인데 뭐. 여기서 청중평가단이 누가 더 잘하네 못하네 했다고 타격을 받겠냐 말이지. 실제로 박정현 1등 한거 가지고 청중평가단이 음악 열심히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낸 까이고 있거든. 성량만 가지고 노래 실력을 판단하는 막귀들이 대중이랍시고 있으니 가요계가 발전을 못하네 어쩌네 하면서. 뭐, 논쟁이야 어떻든 상관없고 중요한 건 평가받는 쪽이 아니라 도리어 평가하는 쪽이 까일 수 있다는 말이지. 그래서 가학에서 나오는 죄책감은 훨씬 경감된다. 여전히 어딘가 약간 미안하기는 하지만 미안해서 못 보겠다는 수준은 안 간다는 말이지.






그래서 이제 가장 껄끄러운 부분은 하나는 거의 해결이 됐다. 그러면 이제 재미있는 부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거다. 게다가 참가자들이 죄다 거의 언터처블인 양반들이라 더 재미있어. 세상에나, 저 대단한 양반한 양반들이 어떻게든 좋은 점수 따보려고 무슨 기획사 오디션 보는 아이돌 지망생들마냥 바짝 긴장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는 걸 상상이나 해본 사람 있나? 특히 노래부를 때는 여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이소라느님이 처음에 긴장 때문에 목이 잠겨서 소리를 제대로 못 내는 모습을 보니까 뭔가 짠하더라고. 흔히 말하는 전복의 쾌감이라는 녀석이지. 뭔가 나랑은 차원이 다를 것처럼 위대해 보였던 존재가 그냥 평범한 일반인이랑 다를거 없는 모습을 드러냈을 때, 열등감이 해소되면서 생기는 어떤 카타르시스. 이게 저열한 쪽으로 흐르면 되게 보기 싫은데 좋은 쪽으로 가면 오히려 동질감과 연대감을 형성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왜 그런거 있잖아. '눈높이를 맞춰라' 뭐 이런 류. 연예인들이 체험 삶의 현장 같은데 나와서 땀 뻘뻘 흘리고 있으면 왠지 보기 좋아보이는 것과 비슷하지.


안그래도 요즘 아마츄어 가수 지망생들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형태로 대중에게 굉장히 친숙해져 있ㄴㄴ 상황이란 말이지. 가수로 먹고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거치는 등용문이라는 인상이 은연중에 있을 정도로. 그런 상황에서 워낙 언터처블해서 오히려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신비화되었기 때문에 매니아들만 찾지 대중에게는 생소한 대가수들이 나와서 서바이벌 오디션 버전의 체험 삶의 현장을 한번 찍는다고 생각해봐. 대중에게 정말 순식간에 다가설 수 있을 거라는 말이지. 되게 익숙하거든. '어라? 그 유명한 가수들이 가수 지망생들처럼 서바이벌을 한다고?' 게다가 대가들도 역시 인간이라 막상 경쟁하라고 하면 지기는 싫기 때문에 당근 평소에는 못 보여주는 인간적인 부분들이 마구 노출되거든. 노래 시작하기 전에 잘 부르려고 긴장해서 잔뜩 얼어있고, TV로 상대 가수 모니터링하면서 불안해하는 모습들. 이 얼마나 인간적이냐.


게다가 더 끝내주는 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양반들이 죄다 대가라는 거야. 가수 지망생들이야 한번 페이스 잃으면 훅 가거든. 초짜니까. 그런데 이 양반들은 처음엔 좀 떨어도 금방 회복해. 그리고 슬슬 제 실력 나오는 거지.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가수 지망생이나 다를 바 없어 보였던 사람들이 노래를 하면 할수록 초짜랑은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뽀쓰를 내뿜는다. 직접 본 사람들은 긴 말 안해도 알겠지. '히밤, 역시 진짜배기는 다르구나.'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되는 거다. 친숙해보였던 인간이 다시 저 닿기 힘든 차원너머로 떠나버리는 거야. 저 하늘 위에서 노닐고 있는 줄 알았던 대가가 서바이벌이라는 진짜 험블한 대중적인 위치로 내려왔다가 다시 자기 힘으로 저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상징성. 이거 진짜 대중에게 호소력이 직빵이거든. 유명한 영웅담이라는 것들이 죄다 저 포맷이라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지. 예수교 싫어하는 양반들이 되게 많은거 알고 있는데 그래도 예수교가 괜히 오래 울궈먹고 사는거 아니다. 예수 위치가 딱 저거거든.






그래서 적어도 1화만 놓고 봐서는 진짜 뜰 가능성이 보였다. 가수들이 정말 잘해줬거든. 고고한 척 하지 않고 불안해하고 긴장하는 인간적인 면모들을 솔직하고 과감하게 보여줬고, 그러면서도 자기 실력들은 100% 발휘해줬고. 참 어려운 일이었는데 자신들의 역량으로 한편의 영웅담을 완성해버린거다. 그러니 이렇게 대중 호응도가 크지.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부터야. 이제는 정말 누군가는 떨어지게 되거든. 제대로 된 의미에서의 서바이벌이 시작되는 거지. 그런데 여태 말했던 것처럼 참가자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 아마츄어가 아니라 대가들이란 말이지. 아마츄어는 어차피 실력이 별로 없다는 거 다들 알아. 그러니 떨어져도 그럴만 한 거지. 다들 얘는 실력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가 보다 하고 납득할 수가 있는 거야.


 하지만 대가들은 다르다. 이 양반들은 여기서 떨어질만한 실력인지 아닌지 일반인들이 확신을 할 수가 없어. 스스로 확인을 못하니 쓸데없는 설왕설래가 생긴다. 그냥 등수만 매기는 레벨에서도 청중평가단의 자질을 의심하는 소리가 나오는데, 탈락자가 실제로 발생하면 뭐 생각할 필요도 없지. 그래서 이제는 이야기가 있어야 돼. 마치 영웅담 속에서 중간에 죽어버리는 영웅이 있다면 그건 반드시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냥 죽을만 해서 죽은게 아니라 진짜 최선을 다했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이유가 작동을 해서 불가피하게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처럼. 그래야 영웅의 비범함에 걸맞는 비장미가 생기는 거거든.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영웅 스스로 만들어낼 수가 없다. 그러니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의 역할, 즉 연출의 역할이 엄청 중요해지는 거야.






일단 서바이벌 과정에서 드러나는 고민과 격정은 분명히 드러나야 할 거다. 하지만 절대 아마츄어들 보여주듯이 날것으로 막 내보내면 안 되겠지. 이 양반들은 무대에서 이미 자기가 초짜들이랑은 차원이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걸 자기 실력으로 어필했단 말야. 솔직히 순위 매기기도 송구스러울 정도로. 암만 막귀라도 그 정도는 들어보면 누구나 구별할 수 있단 말이지. 그러니 그 감정들이 상당히 세련되게 전해져야 돼. 대가들의 품격을 손상시키지 않을 정도로 멋지게. 장담하건데 슈스케에 나오는 아마츄어들 찍듯이 편집해서 내보내면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만만치 않게 생길 거다. 가수들도 진짜 싫어해서 출연 의사 밝히는 사람 얼마 없을 거고.
 

그리고 탈락하고 떠나는 과정도 아마츄어 애들 다루듯이 '열심히 했지만 결과가 이러니 참 아쉽게 됐다. 그래도 수고했어'라는 수준의 훈훈함으로는 불충분하다. 보는 사람들이 탈락 결과에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줘야 할 필요가 있어. 게다가 그 이야기는 어느 정도 비장미가 있어야 하고. 이런 조건들이 충족이 안 된다면 MBC는 괜히 대가들만 잘못 건드린 죄로 정말 대역죄인이 되어 망하는 거지. '이거 보여주려고. 이소라 김건모 같은 레전드들을 끌어들인거냐!'라는 반발이 장난 아닐 거라고. 그런데 과연 MBC 예능이 이런 영웅담을 제대로 다룰 만한 연출과 편집 역량이 있을래나 모르겠다. 예능이 아니라 사극쪽 스태프들 데리고 와야 할 것 같은데 말이지. 다음 화 봐야 알겠지만, 좀 걱정스럽긴 하다. 본인이 개인적으로 이영희 PD 좋아하는 데다 MBC를 좀 아끼는 편이라 말이지. 쌀집 아저씨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무모한 선택을 했을까. 하여간 잘 됐으면 좋겠어.

'루저'가 욕설이 되지 않는 세상이기를

이글루스에 미친과학자님의 좋은 글(http://madsyntst.egloos.com/4363715) 이 올라와 있더군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사실 자본주의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양적 팽창이 충분히 일어나면 결국 질의 향상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기본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새마을 운동의 모토가 '많이 벌어보세'가 아니라 '잘 살아보세'였다는 것이 그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게 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구, 보다 인간다운 삶에 대한 희망. 그런 것이 저변에 깔려있었기에 다들 죽어라 일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그런데 어째 발전을 하면 할수록 그놈의 '질의 향상'은 어느 구석에 처박혀서 잊혀져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옆동네는 쌀밥에 고기국 먹는 것이 목표라는데 이 정도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고작 쌀밥에 고기국 매일 먹자고 그렇게 죽어라 달려온 것이 아닐텐데 말이죠. 전세계 200여개가 넘는 국가들 중에서 그놈의 저주스러운 상위 10%에 속하는 대한민국이 고작 '배 곯지 않아서 참 행복해요' 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인류 규모로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잘 살아보세'라는 화두가 이제는 새마을운동 시대를 벗어나서 좀 더 많은 내용을 담아내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기는 한데 말이예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경쟁, 그래서 미친과학자님과 우리 모두가 바라는 제대로 된 경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대관절 '무얼 위해서' 경쟁하는지가 먼저 고민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이놈의 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사회구성원들이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구성원은 트랙을 벗어나서 다른 방식의 경쟁을 모색해볼 수 있는 거겠죠. 요즘 거의 유일한 대세인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적의 경쟁도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사실 돈은 기본적으로 재화의 교환수단입니다. '무언가와 바꾸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죠.
 
하지만 요즘은 다들 자신이 이렇게까지 아득바득 열심히 돈을 벌어서 도대체 무엇과 바꾸고 싶은지 그다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적이 '가지고 싶은 그 무엇' 이고 그것을 얻기 위한 많은 수단 중의 하나가 '돈' 일 텐데도 말이죠. 일단 잔뜩 벌어놓고 목적은 그 다음에 생각하겠다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목적도 없이 잔뜩 벌어놓고 무엇과 바꿔야할지 몰라서 그냥 되는대로 펑펑 써재끼면서 소위 돈지랄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돈 많은 거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런 거 보통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었다' 라고 하지 않던가요?

미다스 왕의 이야기를 다들 한번씩 들어본 적이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신에게 손에 닿는 것을 죄다 황금으로 만들어달라는 소원을 빌어서 소원 성취했던 왕이죠. 요즘 분위기에서는 다들 부러워할 만한 사람입니다. 로또 맞은 것보다도 더 대박이죠. 그런데 참으로 골계적이게도 손에 닿는 것마다 죄다 황금으로 바뀌니까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직접 먹지 못하고, 멋진 옷이 있어도 직접 입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직접 만지지 못합니다. 황금은 썩어날 만큼 넘치는데 제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반병신이나 다름없으니 환장할 노릇이죠. 황금을 왕창 주고 누구 시킬 수도 있습니다만, 이런 신세는 돈만 있다 뿐이지 사실 노예나 다름없습니다. 직접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일도 세상에는 너무나 많구요. 그래서 견디다 못한 미다스 왕은 신에게 소원을 물러달라고 빌죠. 고리타분하기는 합니다만, 고리타분하다고 무시할 만한 이야기는 분명 아닌 것 같습니다.

황금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유가 될 수 있기는 하겠습니다만, 황금 그 자체만으로는 치열한 경쟁을 설명하는 충분한 이유는 되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도 돈을 많이 벌어서 바꾸고 싶은 그 무엇, 돈으로 바꿀 수 없다면 돈을 벌기 위한 경쟁 자체가 그 무의미해지는 그 무엇. '그 무엇'에 대한 고민이 있기 전까지는 뭘 위해서 왜 경쟁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지지 않기 위해' 죽어라 달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나 참... '역사의 종언' 운운할 정도로 인류가 내놓은 궁극의 해결책이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그동안 만물의 영장 어쩌고 드립치면서 해왔던 잘난 척이 부끄러워서라도 다들 접시물에 코 박고 죽어야 하지 않을 런지요.



그런 견지에서 특히나 요즘 '루저'라는 말이 은연중에 퍼지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처음 미국 드라마들을 접했을 때, 타인을 경멸하는 욕으로 '루저'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을 보고 참으로 쇼킹했습니다. 도대체 저놈의 동네에서는 '경쟁에서 배패한다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로 인식되길래 욕설로까지 쓰이나 하고 말이죠.
 
우리나라에서도 패배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다지 보편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패배자'. 그다지 입에 착 달라붙는 욕설은 아니죠. 제 기억으로는 대개 패배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패배에 이르게 된 원인을 경멸하는 표현이 더 일반적이었습니다. 너무 게으르다든가, 너무 교만하다든가, 너무 작다든가, 너무 뚱뚱하다든가, 너무 머리를 안 썼다든가, 너무 몸 쓰는 법을 연습하지 않았다든가(각 상황에 적합한 욕설은 각자가 알아서^^::) 말이죠. 특별히 흠 잡을 곳 없이 최선을 다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했다면 패배했다는 사실을 가지고 경멸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추켜세우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대놓고 경멸하지는 못했죠. 결과만이 아니라, 결과에 이르는 과정 역시 많은 부분 고려해서 경멸의 대상을 정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루저'라는 욕설은 실로 가차없습니다. 결과에 이르는 과정은 과감하게 생략해버리고, 그냥 패배했다는 결과만 가지고 경멸의 대상으로 삼죠. 그런 만큼 '루저'라는 욕설은 공허합니다. 결과만 있을 뿐, 경멸하는 대상에 대한 평가나 경멸하는 이유에 대한 컨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에 여기에는 아무거나 넣어도 다 들어맞습니다. 게을러도 루저고, 교만해도 루저고, 뚱뚱해도 루저고, 깡말라도 루저고 기타 등등. 분명 어떤 대상을 향하는 욕이기는 한데 그 대상이 뭐가 어때서 욕을 먹어야 하는지 전혀 설명이 안 되어 있죠. 미국 드라마를 그럭저럭 본 편이지만 루저라는 욕설 만큼 어떤 상황에서 쓰는 것인지 파악하기 힘든 욕설도 없더라구요. 쟤들은 욕설도 참 공허하게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서 미국 따라하기의 대가인 일본에서 '루저'라는 욕설이 일반화되고, 그 일본 따라하기의 대가인 우리나라에도 '루저'라는 욕설이 슬금슬금 기어들어오더군요.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남자 키가 180cm 이하인 것이 왜 경멸의 대상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걸 경멸하고 싶으면 '난쟁이' 라든가, '땅딸보' 라든가, '숏다리' 라든가 하는 주옥같은 표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루저'인가요? 180cm 이하의 남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놓고''무엇과 경쟁해서', '어떻게' 패배한 것이죠? 도대체 어떤 경쟁이 있었고, 어떤 식으로 경쟁했고, 어떤 과정으로 패배했을길래. '패배자'라는 이유로 경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아무런 컨텐츠도 없는 욕설로 경멸하고, 아무런 컨텐츠도 없는 욕설로 경멸당하고, 그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고. 그 사건 이후로 '루저'라는 표현이 심심치않게 등장하더군요. 우리나라도 미국만큼이나 공허하고 살기 팍팍한 사회가 되어간다는 증거인가 싶어서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습니다.

 


왜 경쟁하는지 목적도 제대로 고민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덮어놓고 경쟁만 부추기고, 경쟁에서 낙오하는 사람들을 왜 경멸당해야 하는지 이유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경멸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이런 사회에서 인간이 경주마보다 나을 게 뭐가 있나 싶습니다. 우승을 위해서 교배당하고, 우승을 위해서 사육당하고, 우승을 위해서 눈가리개를 달아야 하는 신세나 다를 게 없죠. 그래도 경주마보다는 인간 처지가 낫다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놈의 말들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지 알아보시면 그런 말은 안 나올 겁니다. '개성'과 '다양성' 그리고 '존엄성' 이라는 부분을 인간에게서 거세시켜버리면 경주마들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신하실 수 있는 분들 별로 없을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버락 오바마가 자주 강조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이보다 더 나은 대우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렇게 바꿔볼 수 있지 않을 런지요. '인간은 경주마보다 더 나은 대우을 받을 자격이 있다.'

어떻게해야 인간이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지 사실 뾰족한 아이디어는 없습니다만, 아이디어가 없다고 포기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없는 아이디어라도 짜내야 하는 문제이죠. 고작 경주마에도 못 미치는 대우를 받고 있다면 일단 한 개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나 잘난 척을 하던 만물의 영장님들이 고작 이 정도 지혜 밖에 못 짜낸다고 한다면 종으로서의 존엄성에도 타격이 클테니 말이죠.


꼰대짓에 너무 심취하면 기둥뿌리 썩는 줄도 모르게 됩니다.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놈들은 자격이 있어야 한다.' 는 식의 논리는 정말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당장 개판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면, 이거 좀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고 지적하는 정도야 '환경미화' 정도의 차원에서라도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욕구일 텐데 말이죠. 우리 동네 골목길이 무지하게 지저분해서 보기에도 안 좋고 심지어 악취까지 난다면 '여러분, 우리 골목길 청소 좀 해야하지 않을까요?' 정도의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동네 아줌마도 할 수 있는 거고, 유치원 꼬맹이도 할 수 있는 거고, 하릴 없이 노는 청년 백수라도 할 수 있는 거고 말이죠. 왜냐하면 그 사람들도 동네 사람들이거든요. 동네의 문제이자 자기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자기 문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입장을 밝히겠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가 되는 겁니까?

그런데도 문제제기가 있을 때마다 걸핏하면 자격을 들먹이고, 그게 또 먹히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보면 참 묘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차라리 개판이 유지되는 것이 본인에게 이득이 된다면야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겠습니다. 하지만 딱히 이득을 보는 입장에 있는 것도 아닌지라 평소에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고 기회가 되면 고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다른 놈들이 그거 가지고 소란을 떨면 그건 또 싫어서 '과연 네놈이 목소리 높일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검증하려 드는 기묘한 태도를 취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무지하게 많죠. 특히 '대한민국 아저씨'들 중에서는 정말 주류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습니다.


아니, 도대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있기는 있는 겁니까? 당장 동네 골목길이 개판 오분전인데 가정 주부는 '마을 일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니까' 목소리 높여 불평하면 안 되고, 유치원 꼬맹이는 '애가 아무 것도 모르니까' 안 되고, 청년 백수는 '쓸데없는 거 신경쓰지 말고 지 앞가림부터 해야하니까' 안 되고. 그럼 도대체 동네 골목길 청소라는 동네 사람들 모두의 이슈는 누가 공론화헤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데요. 마을 일도 잘 알고, 나이도 지긋하시고, 자기 앞가림은 잘 하시는 당신요?


그런데 또 이런 분들 보면 재미있는 점이 남까대는 거 좋아하는 것 치고는 그다지 적극적이지는 않죠. 괜히 화딱지 나서 목청 높이고 싶은 날 '이 놈의 동네는 죄다 썩었네 어쩌네' 하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일은 잘 하시면서 정작 동네 청소해보자는 소리는 잘 안 한다는 말입니다. 뭐,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닌 것이 그러는 자기자신도 잘해봐야 동네 아저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희한하게 잘 알고 있거든요. 괜히 나서봐야 몸만 피곤하고, 일이 잘 안 풀리면 망신만 당할 거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자리보전하는 것이 자기 한 몸 편한 일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 한몸 편하고 싶은 욕구야 사람에게는 다들 있는 거니 그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분들에게 정말 아쉬운 싶은 것이 하나 있더군요. 그럴거면 도량이라도 좀 크셨으면 좋겠다랄까요. 눈앞에 문제가 던져져 있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누군가는 해결을 좀 해보자고 목소리 높이기 마련입니다. 본인이 귀찮아서 그 역할을 하기 싫다면 남이 목소리 높이고 시끄럽게 구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정도의 도량은 있는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는 다들 모여서 의견을 교환하고 합의점을 찾고 대책을 마련해서 모두 함께 노력해야 간신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자면 누군가는 나서서 시끄럽고 귀찮게 굴어야 합니다. 생각 좀 해보자고 권유해야 하고, 모여서 의논이나 한번 해보자고 제안해야 하고, 서로 때로는 충돌도 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야 하니까요.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아예 해결의 실마리조차 마련되지 않으니 말이죠.
 

하지만 많은 '대한민국 아저씨'들은 본인은 귀찮아서 꿈쩍도 하기 싫은 주제에 그릇은 좁쌀만 해서 누가 내 앞에서 목소리 높이면서 활개치는 꼴은 눈뜨고 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괜히 자격을 빌미로 꼬투리 잡아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죠.
'니 앞가림이나 잘해.'
여기에는 숨겨진 한마디가 있습니다.
'내 앞에서 잘난 척 하는 꼴은 죽어도 못 봐주겠으니'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를 같이 좀 고민해보자고 화두를 던지는 일이 왜 잘난 척입니까? 니가 시끄럽게 굴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 가만히 있으라구요? 그래서 가만히 있어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이대로 마냥 모든 문제들을 끌어안고 사이좋게 썩어문드러질까요?


아, 그러고보니 하나 해결책이 있으시기는 하더군요. 나도 찍소리 못할 만큼 조낸 끝내주게 잘난 놈이 떡하고 등장해서 모든 문제들을 짜자잔하고 해결해주는 겁니다. 걸핏하면 박정희 찬양이 나오고, 독재시절이 더 좋았다는 둥, 일본놈들이 지배했던 시대에 오히려 발전이 잘 되었다는 둥 하는 헛소리는 다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겠죠. 나 원, 무슨 백마 탄 왕자님 기다리는 부억때기 계집애도 아니고 말이죠. 백마 탄 왕자님이 비루하고 못난 아가씨를 시궁창에서 꺼내주는 판타지는 딱 사춘기 소녀용 소녀만화까지만 유효한 겁니다. 아니, 요즘에는 소녀만화의 여주인공들도 가만히 앉아서 투덜대기만 하면서 왕자님이 구해주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문제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하고, 그런 과정에서 잘난 남자 눈에 들어서 성공하는 이야기들이 많죠. 도대체 요즘 소녀들조차 가지지 않는 팬시한 감수성은 무얼 근거로 나오는 겁니까? 스스로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만큼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발 꼰대짓을 할거라면 남보기 그럴 듯 하게라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고작 한다는 짓이 어린애가 운동권 경력있다는 사실을 들춰가면서 출세하려고 자기 PR 하는거네 어쩌네 하는 모습들을 보니 우습기 한량없습니다. 하려면 좀 더 그럴 듯한 방법도 많잖아요. 문제 의식은 공감하지만 문제 제기의 방식이 좀 더 건설적이면 좋겠다든가, 대학의 직업교육기관화는 돌이킬 수 없는 추세인만큼 그로 인한 폐해가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을 띌 때까지는 괴롭지만 지켜보는 것이 섣불리 건드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든가 말이죠. 문제는 뭔지는 알고 있고, 하지만 스스로 나서서 해결할 생각은 요만큼도 없고, 그런데 내 앞에서 누가 나서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고, 그래서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서 잔소리나 실컷해서 그냥 주저앉혔으면 좋겠고. 이것 참, 애들도 아니고 말이죠. 해결방법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인지 요원한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어떻게든 잘 해결만 되면 당신들에게도 딱히 나쁠 것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냥 가만히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것도 못하는 알량한 도량으로 도대체 누구를 훈계하려고 하시는지요.





p.s. 이오공감에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추천평을 보다보니 한가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글 남깁니다. 이 글은 특정 블로거 몇몇 분들에 의해 자극을 받아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비단 그 몇몇 분들을 겨냥해서 쓴 글은 아닙니다. 그 분들만 탓할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의 비틀린 '아저씨즘' 이나 '꼰다이즘' 이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사고방식이 아니니 말이죠. 저도 가지고 있고 아마 이 글을 보는 많은 분들도 가지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 모두의 문제는 역시 '자격이 되는 누군가'가 아니라 '자격은 없을지는 몰라도 당사자일 수 밖에 없는 우리 모두' 가 노력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데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사고방식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모르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겠지만, 알면 좀 조심을 할 수 있을테니 말이죠. 나잇살이나 먹어서 백마 탄 왕자님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아닙니까.

게다가 백마 탄 왕자님 비스무레한 것이 나타나도 '말이 순백이 아니어서 마음에 안 든다'는 둥. '왕자님 생긴게 맘에 안 들어서 싫다'는 둥. '진짜 왕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우니 왕위 계승의 증표를 보이라'는 둥, 대한민국 아저씨들은 의외로 예민한 사춘기 소녀들 만큼이나 까탈스러운 데다가 안타깝게도 사춘기 소녀들에게는 없는 속물스러움까지 적나라합니다. 그러니 늙어죽을 때까지 '제대로 된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날 일은 없겠죠. 동화 속에서도 그런 아가씨들까지 챙기는 왕자님은 못 봤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백마 탄 왕자님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이쯤에서들 접으시는 것이 어떨까요. 애틋한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만, 본인에게도 도움이 안 될 것이고 모두에게도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옆에서 보기에도 참..... 뭐랄까, 예, 좋지 않거든요.

못나고 믿음이 안 가게 생겼어도 백설공주가 난쟁이들을 조금만 더 신뢰했더라면 적어도 독이 든 사과를 먹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름 그 동네에 빠삭할 것이 분명한 난쟁이들이라면 못 보던 사과장수가 별안간 주고 간 사과를 의심했을 것이 당연하거든요. 그런데 백설공주는 난쟁이들에게 의견을 구하지도 않고 그걸 냉큼 받아먹었다가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왕자가 마침 그 근처를 지나갔기에 망정이지, 왕자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겠어요. 백설공주급으로 '될 놈'이 아닌 이상에야 그런 기연은 기대하기 힘들 겁니다. 그러니 괜히 백마 탄 왕자님에 눈 멀지 말고, 주변의 난쟁이들과 진지하게 함께 살아갈 방법을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팔자를 한방에 고치지야 못하겠지만, 엄한 사과 받아먹고 몸져 눕는 일은 없을테니 말이죠.


'온정주의'가 문제일까

'체벌이 폭넓게 허용된 것은 온정주의 때문이기도 하다'는 식의 주장을 밸리에서 보고 못마땅한 생각부터 들었던 것은 이러한 주장이 마치 확립된 규범에 의한 통제와 온정주의를 양립하기 힘든 개념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온정주의'가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는 정의하기 힘들기는 하지만 '규율 자체의 엄격한 집행을 최고의 가치로 두지 않고 규율의 목적 달성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사람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라는 정도로 정리하면 '온정주의'가 '규율'과 밀접하게 대치되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엄격함'과 대치되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정주의'가  규범 즉, '법과 원칙'에 대치되는 개념인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법과 원칙'의 수준 자체에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자유민주주의'를 표방'은' 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떤 규범이 그 정당성을 얻으려면 수범자의 자발적인 동의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는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규범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수범자 자신과 수범자가 속해있는 공동체가 보존해야 할 더욱 중요한 가치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일 것이어야 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취해지는 수단도 수범자가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적정한 것이어야 하며, 그 무엇보다도 규범에 의한 통제 자체를 수범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통제자의 이해관계 못지않게 수범자의 이해관계 역시 충분히 반영되어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규범 자체가 수준이 좀 있어야 그 규범에 의한 통제가 먹힌다는 이야기죠. 그렇지 않고 마냥 '통제하기 편하자고' 만들어진 규범은 뭐랄까요. 애초부터 '령이 안 서기 때문에' 정작 통제의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소매치기 하는 놈은 손목을 자르고, 거짓말 하는 놈은 혀를 자르겠다' 라고 한다면 당장은 겁주기 편해서 좋아보일지 몰라도 막상 일이 터지면 적용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꼬마가 사탕을 훔쳤다고 '법과 원칙에 입각해서' 진짜로 손목을 자를 수는 없는 거거든요. 그냥 볼기짝 몇 대 때리고 돌려보내는게 제일 좋은 방법인데 이러면 이때부터 '온정주의의 폐해', '엄격한 법집행' 운운이 시작될 만한 문제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마음 좋은 사람이야 볼기짝 몇 대로 끝날 수도 있지만, 악랄한 사람은 부모 불러다 앉혀놓고 '아들의 손목'과 '그에 상응하는 성의'를 선택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위에다가는 "에이, 그래도 어떻게 꼬마 손목을 자릅니까? 그냥 보내줬습니다." 라고 온정주의를 핑계로 삼아놓고, 슬쩍 뒤로는 '성의'를 받아챙기는 거죠. 부모 입장에서 이게 마음에 안 든다고 윗대가리에게 일러바칠 수도 없는게, 아마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다음 번에 혹시라도 내 아이가 또다시 사탕을 훔친다면 그때는 진짜로 손목이 달아날 테니까요.

사실 위에서 든 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규범이 갖추어야 할 합리성이라기 보다는 규범 그 자체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합리성에 가깝기는 합니다만,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이놈의 대한민국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충 만들어서' '적당히 굴려온' 부분들이 많은 나라라서 이런 최소한의 합리성도 제대로 못 갖춘 규범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습니다. 한 30여년 전만 해도 경찰들이 줄자 들고 다니면서 여자 스커트 길이 재볼 수 있었던 나라지 않습니까 :P 이런 상황이니 자유민주주의라는 그나마 상당히 고급스러운 수준의 정치체제에서 필요로 하는 목적정당성이니 침해최소성이니 하는 요건들에 미달하는 하는 규범들은 그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다면 다들 몸으로 직접 경험들 해보셨을 터이니 아시겠지요. 애들 밖에다 풀어놓으면 마땅히 머무를 곳이 없기 때문에 엄한 데서 사고치고 다닐까봐 겁나서 억지로 수용시켜놓는 강제수용소의 역할도 상당부분 겸하고 있는 학교라는 장소에, 왜 국영수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두발규제를 당해야 하는지, 왜 교복은 꼭 입어야 하는지, 왜 야간자율학습은 필요한 것인지 제대로 납득시키지도 못한채 한창 나이의 에너지 덩어리들을 몰아넣고, 하여간 문제가 생기면 죄다 학교와 선생 책임이니 알아서들 하라고 책임을 떠넘겨 버린다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규율이 서고 그에 따라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겁니다. 현재 밸리에서 문제가 된 체벌 역시도 온정주의에 입각해서 '봐주려는' 선생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봐주겠다는 명목으로 '대신 나에게 좀 맞아라' 라고 자신의 지위를 멋대로 이용하고, 그런 선생을 확실하게 제재할 규범이 없는 사회가 궁극적인 문제겠지요. 마치 포로수용소에서 적군 포로를 학대하는 간수들을 눈감아줄 수 밖에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야, 걔들이 사고만 못 치게 해. 큰 문제는 만들지 말고.'

그러니 무턱대고 '온정주의'를 까지는 맙시다. 규범라는 것이 애초에 인간사회의 복잡성을 제대로 담아내기가 힘든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어쨋든 최소한의 질서유지를 위해서 억지로 단순하고 간단하게 만들어놓은 조악한 물건이라서 이걸 섬세하고 복잡한 인간의 삶에 무턱대고 들이대기 시작하면 그것으로 행복해질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온정주의는 인간이 규범이라는 딱딱하고 무거운 물건 아래에서 숨 막히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법과 원칙이 온전히 바로 서있는 사회에서라도 그 사회가 목표로 하는 것은 인간의 행복한 삶일 테니까요. 문제는 최소한의 수준을 갖춘 법과 원칙조차 설 수 없도록 만드는 열악한 환경이 문제인 것이고,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탄생한 수준 미달의 규범들이 문제인 것이고, 그런 규범들을 이용해서 온정주의를 빌미삼아 멋대로 권한을 남용하는 자들을 내버려둘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에 있을 겁니다.
 
예, 인간의 따뜻한 마음이 문제인 것이 아니고, 우리 사회의 수준이 그 따뜻함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허접한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사람들 보고 냉혈한이 되라고 구박하지 말고, 따뜻한 것이 미덕이 될 수 있는 사회를, 그리고 규범을 만드려고 노력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법과 원칙과는 별로 상관없는 인생을 살아온 아저씨가 자기 손에 법과 원칙을 손에 틀어쥐자마자 '엄정한 법집행' 운운하는 꼴이 평소에 매우 고까웠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진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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