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에 미친과학자님의 좋은 글(http://madsyntst.egloos.com/4363715) 이 올라와 있더군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사실 자본주의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양적 팽창이 충분히 일어나면 결국 질의 향상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기본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새마을 운동의 모토가 '많이 벌어보세'가 아니라 '잘 살아보세'였다는 것이 그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게 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구, 보다 인간다운 삶에 대한 희망. 그런 것이 저변에 깔려있었기에 다들 죽어라 일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그런데 어째 발전을 하면 할수록 그놈의 '질의 향상'은 어느 구석에 처박혀서 잊혀져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옆동네는 쌀밥에 고기국 먹는 것이 목표라는데 이 정도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고작 쌀밥에 고기국 매일 먹자고 그렇게 죽어라 달려온 것이 아닐텐데 말이죠. 전세계 200여개가 넘는 국가들 중에서 그놈의 저주스러운 상위 10%에 속하는 대한민국이 고작 '배 곯지 않아서 참 행복해요' 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인류 규모로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잘 살아보세'라는 화두가 이제는 새마을운동 시대를 벗어나서 좀 더 많은 내용을 담아내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기는 한데 말이예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경쟁, 그래서 미친과학자님과 우리 모두가 바라는 제대로 된 경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대관절 '무얼 위해서' 경쟁하는지가 먼저 고민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이놈의 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사회구성원들이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구성원은 트랙을 벗어나서 다른 방식의 경쟁을 모색해볼 수 있는 거겠죠. 요즘 거의 유일한 대세인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적의 경쟁도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사실 돈은 기본적으로 재화의 교환수단입니다. '무언가와 바꾸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죠.
하지만 요즘은 다들 자신이 이렇게까지 아득바득 열심히 돈을 벌어서 도대체 무엇과 바꾸고 싶은지 그다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적이 '가지고 싶은 그 무엇' 이고 그것을 얻기 위한 많은 수단 중의 하나가 '돈' 일 텐데도 말이죠. 일단 잔뜩 벌어놓고 목적은 그 다음에 생각하겠다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목적도 없이 잔뜩 벌어놓고 무엇과 바꿔야할지 몰라서 그냥 되는대로 펑펑 써재끼면서 소위 돈지랄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돈 많은 거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런 거 보통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었다' 라고 하지 않던가요?
미다스 왕의 이야기를 다들 한번씩 들어본 적이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신에게 손에 닿는 것을 죄다 황금으로 만들어달라는 소원을 빌어서 소원 성취했던 왕이죠. 요즘 분위기에서는 다들 부러워할 만한 사람입니다. 로또 맞은 것보다도 더 대박이죠. 그런데 참으로 골계적이게도 손에 닿는 것마다 죄다 황금으로 바뀌니까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직접 먹지 못하고, 멋진 옷이 있어도 직접 입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직접 만지지 못합니다. 황금은 썩어날 만큼 넘치는데 제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반병신이나 다름없으니 환장할 노릇이죠. 황금을 왕창 주고 누구 시킬 수도 있습니다만, 이런 신세는 돈만 있다 뿐이지 사실 노예나 다름없습니다. 직접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일도 세상에는 너무나 많구요. 그래서 견디다 못한 미다스 왕은 신에게 소원을 물러달라고 빌죠. 고리타분하기는 합니다만, 고리타분하다고 무시할 만한 이야기는 분명 아닌 것 같습니다.
황금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유가 될 수 있기는 하겠습니다만, 황금 그 자체만으로는 치열한 경쟁을 설명하는 충분한 이유는 되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도 돈을 많이 벌어서 바꾸고 싶은 그 무엇, 돈으로 바꿀 수 없다면 돈을 벌기 위한 경쟁 자체가 그 무의미해지는 그 무엇. '그 무엇'에 대한 고민이 있기 전까지는 뭘 위해서 왜 경쟁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지지 않기 위해' 죽어라 달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나 참... '역사의 종언' 운운할 정도로 인류가 내놓은 궁극의 해결책이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그동안 만물의 영장 어쩌고 드립치면서 해왔던 잘난 척이 부끄러워서라도 다들 접시물에 코 박고 죽어야 하지 않을 런지요.
그런 견지에서 특히나 요즘 '루저'라는 말이 은연중에 퍼지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처음 미국 드라마들을 접했을 때, 타인을 경멸하는 욕으로 '루저'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을 보고 참으로 쇼킹했습니다. 도대체 저놈의 동네에서는 '경쟁에서 배패한다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로 인식되길래 욕설로까지 쓰이나 하고 말이죠.
우리나라에서도 패배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다지 보편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패배자'. 그다지 입에 착 달라붙는 욕설은 아니죠. 제 기억으로는 대개 패배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패배에 이르게 된 원인을 경멸하는 표현이 더 일반적이었습니다. 너무 게으르다든가, 너무 교만하다든가, 너무 작다든가, 너무 뚱뚱하다든가, 너무 머리를 안 썼다든가, 너무 몸 쓰는 법을 연습하지 않았다든가(각 상황에 적합한 욕설은 각자가 알아서^^::) 말이죠. 특별히 흠 잡을 곳 없이 최선을 다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했다면 패배했다는 사실을 가지고 경멸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추켜세우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대놓고 경멸하지는 못했죠. 결과만이 아니라, 결과에 이르는 과정 역시 많은 부분 고려해서 경멸의 대상을 정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루저'라는 욕설은 실로 가차없습니다. 결과에 이르는 과정은 과감하게 생략해버리고, 그냥 패배했다는 결과만 가지고 경멸의 대상으로 삼죠. 그런 만큼 '루저'라는 욕설은 공허합니다. 결과만 있을 뿐, 경멸하는 대상에 대한 평가나 경멸하는 이유에 대한 컨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에 여기에는 아무거나 넣어도 다 들어맞습니다. 게을러도 루저고, 교만해도 루저고, 뚱뚱해도 루저고, 깡말라도 루저고 기타 등등. 분명 어떤 대상을 향하는 욕이기는 한데 그 대상이 뭐가 어때서 욕을 먹어야 하는지 전혀 설명이 안 되어 있죠. 미국 드라마를 그럭저럭 본 편이지만 루저라는 욕설 만큼 어떤 상황에서 쓰는 것인지 파악하기 힘든 욕설도 없더라구요. 쟤들은 욕설도 참 공허하게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서 미국 따라하기의 대가인 일본에서 '루저'라는 욕설이 일반화되고, 그 일본 따라하기의 대가인 우리나라에도 '루저'라는 욕설이 슬금슬금 기어들어오더군요.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남자 키가 180cm 이하인 것이 왜 경멸의 대상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걸 경멸하고 싶으면 '난쟁이' 라든가, '땅딸보' 라든가, '숏다리' 라든가 하는 주옥같은 표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루저'인가요? 180cm 이하의 남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놓고', '무엇과 경쟁해서', '어떻게' 패배한 것이죠? 도대체 어떤 경쟁이 있었고, 어떤 식으로 경쟁했고, 어떤 과정으로 패배했을길래. '패배자'라는 이유로 경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아무런 컨텐츠도 없는 욕설로 경멸하고, 아무런 컨텐츠도 없는 욕설로 경멸당하고, 그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고. 그 사건 이후로 '루저'라는 표현이 심심치않게 등장하더군요. 우리나라도 미국만큼이나 공허하고 살기 팍팍한 사회가 되어간다는 증거인가 싶어서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습니다.
왜 경쟁하는지 목적도 제대로 고민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덮어놓고 경쟁만 부추기고, 경쟁에서 낙오하는 사람들을 왜 경멸당해야 하는지 이유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경멸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이런 사회에서 인간이 경주마보다 나을 게 뭐가 있나 싶습니다. 우승을 위해서 교배당하고, 우승을 위해서 사육당하고, 우승을 위해서 눈가리개를 달아야 하는 신세나 다를 게 없죠. 그래도 경주마보다는 인간 처지가 낫다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놈의 말들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지 알아보시면 그런 말은 안 나올 겁니다. '개성'과 '다양성' 그리고 '존엄성' 이라는 부분을 인간에게서 거세시켜버리면 경주마들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신하실 수 있는 분들 별로 없을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버락 오바마가 자주 강조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이보다 더 나은 대우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렇게 바꿔볼 수 있지 않을 런지요. '인간은 경주마보다 더 나은 대우을 받을 자격이 있다.'
어떻게해야 인간이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지 사실 뾰족한 아이디어는 없습니다만, 아이디어가 없다고 포기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없는 아이디어라도 짜내야 하는 문제이죠. 고작 경주마에도 못 미치는 대우를 받고 있다면 일단 한 개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나 잘난 척을 하던 만물의 영장님들이 고작 이 정도 지혜 밖에 못 짜낸다고 한다면 종으로서의 존엄성에도 타격이 클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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